[아홉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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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몬세라트 : 수도원


               바르셀로나 : 람블라스거리, 성가족성당, 구엘공원

 



                                                            [몬세라트 수도원]


880년 한 무리의 목동아이들이 몬세라트산(Montserrat는 카탈루냐어로 "톱니모양의 산"이라는 뜻임)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이러한 천사들의 방문은 한 달 동안 계속되었으며, 산속의 동굴로 이어졌다. 마을 사제들은 이곳을 둘러보다가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훗날 11세기에 올리바 수도원장이 이곳에 작은 수도원을 세웠고, 오늘날에도 80명의 베네딕토회 수사들이 이 바위투성이 산을 찾는 순례자들을 환영하고 있다. 여기서 순례자란 영적인 답을 찾아 수도원 문을 두드리는 모든 사람을 뜻하며, 몬세라트의 수도사들은 그들과 기도와 식사를 나눈다.

 

방문객은 박물관 투어도 할 수 있다. 박물관 건물은 "네 마리 고양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레스토랑 라 카사 마르티를 포함하여, 바르셀로나의 수많은 랜드마크를 설계한 조셉 푸치 카다파르크의 작품이다. 이 박물관에는 이집트의 석관부터 21세기 조각상에 이르기까지 1,3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또, 몬세라트 소년합창단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는 이미 14세기부터 음악학교가 있었다.

 

몬세라트 산의 단층지괴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트 헤로니 봉까지 이어지는 하이킹 루트를 포함하여, 스펙터클한 바위투성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책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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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셀로나(Barcelona)]


바르셀로나(Barcelona)는 스페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 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인구는 2016년 현재 1,608,746명이고, 면적은 101.3km²이다.


도시의 명칭은 고대 페니키아어인 ‘바르케노’(Barkeno)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B.C. 3세기경 스페인 식민지를 개척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한니발 바르카의 아버지) 가문의 성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 호안 미로와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등 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도시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관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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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블라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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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족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에 큰 감명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의 한 출판업자가 바르셀로나만의 대성당을 짓자는 운동을 벌여 시민 모금이 시작되었다. 1882년 가우디의 스승이었던 비야르(Villar)가 좋은 뜻에 동참하여 무보수로 성당건설을 시작했지만, 무조건 싸게 지으려고만 하는 교구에 질려 1년 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가우디를 후임자로 추천하였다. 젊은 건축가에게 맡기면 공사비를 아낄 수 있을 것이라는 교구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가우디가 공사를 맡았을 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는데, 그는 비야르가 설계한 초기의 디자인을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면서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43년간 이 공사에 남은 인생을 모두 바쳤다. 그는 공사현장에서 직접 인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설계도를 그려 나갔고, 마지막 10년 동안은 아예 작업실을 현장으로 옮겨 인부들과 함께 숙식하면서까지 성당건축에 몰입했다. 그러나 192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는 결국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자신이 지은 이 성당의 지하 납골묘에 안장되었다. 원래 이 납골묘에는 성인이나 왕족의 유해만 안치될 수 있는데, 로마 교황청에서 그의 신앙심과 업적을 높이 사서 허가해 준 것이다.

 

그의 사후, 스페인 내전과정에서 설계도면이 불에 타 사라져 공사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한 후배 건축가들의 기술적 연구를 바탕으로 성당의 건축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 수입만으로 공사비용을 충당하고 있어 착공된 지 130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언제 완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가우디 서거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성가족성당에는 총 3개의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가 있는데, 각각 ‘예수 탄생’, ‘예수 수난’, ‘예수 영광’을 주제로 설계되었고, 이 중 ‘예수 탄생’의 파사드는 가우디가 생전에 직접 완성시킨 것이다. ‘예수 수난’ 파사드는 1976년에 완공되었고, 마지막 남은 ‘예수 영광’ 파사드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3개의 파사드 위에는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12개의 종탑이 세워지고, 중앙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거대한 탑이 세워질 계획인데, 현재까지는 8개의 종탑만 완공되었다. 내부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나무와 꽃들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기존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다. 내부가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미사를 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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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공원]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구엘공원은 공원이라기보다는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가우디 특유의 형형색색 모자이크로 장식된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과자의 집처럼 생긴 건물이나 반쯤 기울어져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인공석굴의 어디쯤에서, 혹은 꾸불꾸불한 산 길 어디에선가 동화 속 요정이라도 만날 것 같은 느낌이다.

 

바르셀로나 교외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구엘공원은 원래는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설계된 곳이다.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 구엘 백작은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도시와 같은 모습을 조성하려고 계획했다. 구엘 백작과 가우디는 이 곳에 60호 정도의 전원주택을 조성하여 스페인의 부유층에게 분양할 예정이었다. 구엘 백작과 가우디의 계획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지만, 당시 시내와의 상당한 거리 등의 불편한 입지조건으로 실패하였다. 또한, 공원부지는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서 땅을 고르는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1900년부터 1914년까지 14년에 걸쳐서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자금난까지 겹치면서 몇 개의 건물과 광장, 유명한 타일벤치 등을 남긴 채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였고,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애초의 원대했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공원은 여전히 스페인이 낳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소수 부유층의 전원도시보다는 수많은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으니, 오히려 그 생명력과 효용 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원설계는 가우디 건축 스타일의 독특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직선이 아닌 곡선을 위주로 한 건물들, 어디서나 시선을 잡아끄는 화려하고 독특한 모자이크장식과 타일,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위태롭게 기울어 있는 나선형의 층계, 깨진 도기 조각으로 사치스럽게 장식해 불협화음 속의 묘한 조화를 느끼게 하는 난간장식, 자연미를 살려 꾸불꾸불한 길과 인공석굴들, 어느 것 하나 ‘가우디답지’ 않은 것이 없다.

      

공원 입구에는 경비의 거처와 관리실로 쓰려고 했던 두 개의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져서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을 연상시킨다. 독특한 모양의 뾰족탑 지붕이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넓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는 앙증맞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평소 그리스.로마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지었다는 신전 건물은 많은 기둥이 특징인 도리스식으로 지어졌다. 곡선의 천장과 천장의 화려한 타일조각, 광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의 경사진 모습은 가우디의 독창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다채로운 장식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분수, 아름다움과 효율성을 겸비한 공원의 명물인 벤치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원에는 과거 가우디가 살았으며, 지금은 가우디 기념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도 있다. 가우디가 사용했던 침대, 책상 등 유품과 데드마스크가 전시되어 있다.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이 감상의 포인트이다. 구엘공원은 성가족성당과 함께,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은 꼭 방문해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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