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직 공무원' 선발시험 합격한 딸의 힐링을 위한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 (12일간, 2017.10.13~10.24)




                                                       [전체 여행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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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 둘째 날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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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 : 스페인 광장, 프라도 미술관, 솔 광장, 마요르 광장


             레도 : 똘레도 전망대, 구시가지 전경, 똘레도 대성당, 산토토메 성당


             콘수에그라 : 풍차마을




                                                              [마드리드(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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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Madrid)는 이베리아반도의 중앙부, 해발고도 635m의 메세타고원에 위치하며, 만사나레스강(江)에 임한다. 유럽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연강수량 419mm로 건조하다. 기온의 일교차가 크며, 겨울 평균기온은 -1℃∼7℃, 여름은 15℃∼30℃이다. 이곳은 정치·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산업도시로서의 중요성도 크며, 도로·철도 및 항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인구상으로는 유럽 제4의 대도시이다.

 

원래 마드리드는 10세기경 똘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이 세운 성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때는 마헤리트라 불렀다. 이 성은 마드리드가 수도로 된 후에는 왕궁이 되었고, 동시에 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1083년 카스티야왕 알폰소 6세가 이를 탈환하였으나, 이때는 국왕의 임시숙소에 지나지 않았다. 1561년 펠리프 2세가 당시의 강대한 왕국을 다스릴 중앙정부 청사를 건설하면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톨레도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고, 궁전도 바야돌리드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17세기 초에 일시 궁전이 바야돌리드로 옮겨졌던 때를 제외하면, 마드리드는 그 후 일관해서 수도로서의 지위를 지켜왔다.


구(舊)시가는 17∼18세기에 건설되었는데, 1808년에는 프랑스군에 점령되어, 고야의 그림 《마드리드의 1808년 5월 3일》로 유명한 5월 2일의 시민저항이 있었고,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보복이 있었다. 구시가의 중심은 라푸에르타델솔(태양의 문)이라 부르는 타원형의 '솔 광장'이며, 서쪽으로는 왕궁 및 부속 왕립 무기고와 통하고, 남서쪽으로는 17세기에 야외극장이었던 '마요르 광장'이 있다. 그 앞쪽의 세바타 광장에서는 아침에 채소와 식료품 시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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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비아(Gran Vía) 거리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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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


스페인 광장은 마드리드를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누는 기준로인 그란비야 대로의 끝쪽에 위치한 광장으로, 소설 <돈키호테>(Don Quixote)를 저술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Cervantes)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1916년에 조성되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애마 로시난테(Rosinante)를 타고 있는 '돈키호테'(Don Quixote)와 나귀 위에 올라탄 '산쵸 판사'(Sancho Panza)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뒤 윗부분에는 마치 자신이 집필한 소설의 주인공들을 내려보기라도 하는 듯 세르반테스의 상이 조각되어 있는 기념탑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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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Cervantes)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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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기념탑' 뒤에 있는 건물은 1950년대에 오타메디(Otamedi) 형제에 의해 설게된 스페인 빌딩(Edificio Espana)으로 전망 좋은 카페와 수영장이 있다. 이 건물은 최근 중국 기업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재건축을 포함한 활용계획에 있어 스페인 정부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20171014_092807.jpg소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Cervantes)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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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와 '산쵸 판사'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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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 꼭대기에는 5대륙을 상징하는 다섯 여신들이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소설 <돈키호테>을 읽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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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동상의 오른쪽에 있는 여인상은 그의 이상형 여인인 ‘둘시네아’ 동상

(소설 속 돈키호테의 짝사랑 연인인 '둘시네아 공주'의 실제모델은 '콘수에그라‘의 풍차마을 인근인 토소보에 살았던 '알돈사 로렌조'라고 함)





“오, 둘시네아 공주님,  

사랑의 포로가 된 이 마음의 주인이시여!  

냉정하게 저를 버리고 떠나는 그대를 보고 이 마음은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아름다운 그대 앞에 절대 나타나지 말라며,  

무섭게 훈계하며 나무나실 때 저는 한없는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대를 향한 사랑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오직 그대만을 위한 이 가슴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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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동상의 왼쪽에 있는 여인상은 그에게 헌신한 여인 ‘아르돈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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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돈키호테>의 무대가 된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La Mancha) 지역(주도 : 똘레도)에서 옮겨온 수 백년 된 올리브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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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의 '세르반테스(1547~1616) 조각상' 뒷편의 ‘이사벨 여왕' (Isabella I) 조각상

    

이사벨 여왕(Isabella I, 1451~1504, 재위기간 : 1474~1504)은 스페인을 통일시켜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으며, 스페인을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훌륭한 왕이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고 국가의 재정난을 극복하였으며, 사재를 털어 콜럼버스(Columbus, 1451~1506)를 적극 후원하여 신대륙 발견을 가능하게 하여 해양대국으로 발전시킴으로써 스페인을 강대국으로 급성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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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중 하나로서,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림과 조각을 위한 전용 박물관으로 설립되었으며 5,000개 이상의 그림과 2,000개 이상의 판화, 1,000개 이상의 주화와 메달 그리고 2천 개 이상의 장식물과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상은 700개 이상이 있다.

 

특히,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엘 그레코(El Greco)와 주세페 데 리베라(Jusepe de Ribera )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네덜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스크(Hieronymus Bosch)의 작품도 다수 있다. 이 밖에도 티티안, 피터 폴 루벤스, 라파엘, 안드레야 만테냐, 보티첼리, 이탈리아의 화가였던 카라바조, 귀도 레니, 알브레이트 뒤러, 렘브란트 등을 비롯한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의 소장작품 중에서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이 있으며 그는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생전에 이탈리아 작가들의 명작들 또한 스페인으로 들여오는데 그의 영감을 발휘하였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게르니카는 민주화가 달성되고 스페인에 반환된 뒤에 프라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가 국립 소피아왕비 예술센터로 1992년에 옮겨졌다. 1992년 19세기 초기 이후의 작품들이 공간문제로 다수 소피아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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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Velázquez) 작 <실 잣는 여인들>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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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Velázquez) 작 〈시녀들(펠리페 4세의 가족)〉(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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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Goya) 작 <옷 벗은 마하>(1799~1800)             * 마하(Maja)란 스페인어로 ‘젊고 멋진 여자’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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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Goya) 작 <옷 입은 마하>(180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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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Goya) 작 <까를로스 4세 가족>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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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초기작(습작) ??, 문화생이 그린 <모나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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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쉬(Bosch) 작 <(세속) 쾌락의 정원>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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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Velázquez) 작 <바쿠스의 승리(술 취한 사람들)>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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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El Greco)의 걸작〈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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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El Greco)의 걸작〈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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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Goya) 작 <마드리드의 1808년 5월 3일>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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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Rubens) 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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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Velázquez) 작 〈이사벨 데 보르본 기마 초상화〉(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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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El Greco) 작 <성 삼위일체> (1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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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Düre) 작 <13세의 자화상>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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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데 마드라조 이 쿤츠(Federico de Madrazo y Kuntz) 작 <빌체스 백작부인, 도냐 아말리에 데 야노 이 도트레스의 초상화>(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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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요(Murillo) 작 <로사리오(묵주)를 든 성모>(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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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브뤼겔(Jan Bruegel) & 루벤스(Rubens) 공동작  <시각의 알레고리>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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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광장(Puerta del Sol)]

 

솔 광장(Puerta del Sol)은 '태양의 문'이라는 뜻으로, 16세기까지 태양의 모습이 새겨진 중세시대 성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드리드의 주요관광지가 주변에 위치하며 스페인 곳곳으로 통하는 9개의 도로가 시작되는 등 마드리드 관광의 거점을 이룬다. 주변에 스페인 백화점 체인인 엘 코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를 비롯하여 상점, 음식점, 카페테리아가 많다. 광장 중앙에는 말을 탄 까를로스 3세(Carlos III)의 동상이 위치해 있다. 또한, 광장의 한 켠에는 또 다른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곰’과 딸기나무 동상이다. 곰이 나무기둥을 붙잡고 딸기를 따먹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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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를 상징하는 '곰'과 딸기나무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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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스 3세(Carlos III)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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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마리블랑카(La Mariblanca)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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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르 광장(Plaza Mayor)]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은 각종 축하행사, 종교의식, 투우, 무도회, 결혼식, 대관식, 처형식 등이 거행되어 왔던 다양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관광객들과 지역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주변에는 수많은 카페, 상점들이 들어선 매우 활기찬 광장이다. 또한, 매주 주말이면 야외 골동품 시장이 열리며, 매년 마드리드 시의 수호성인 성 이시드로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는 시장터였던 마요르 광장은 16세기에 바로크양식의 광장으로 탈바꿈했고, 가로 90m에 세로 109m의 넓이로 유럽에서 가장 큰 공공광장 중 하나이다. 광장을 세우자는 계획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1561년 마드리드의 왕궁으로 옮겨온 후 1580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건축가 후안 데 에레라가 이를 실행했다. 데 에레라는 1590년대에 광장에 들어선 첫 건물인 두 개의 탑이 있는 '카사 데 라 파나데리아'(예전에는 제빵사 길드가 있던 곳)를 지었다. 현재 이 건물을 치장하고 있는 우화적인 벽화는 1992년에 그려진 것이다. 데 에레라의 제자인 후안 고메스 데 모라가 펠리페 3세 시대인 1619년에 광장을 완성했다.

 

1616년에 설치된 펠리페 3세(Felipe III)의 청동 기마상은 1848년에 광장으로 옮겨와 그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1631년, 1670년, 1790년 세 차례에 걸친 화재가 광장에 피해를 입혔다. 마지막 화재가 일어난 이후 광장을 재건축하는 작업은 건축가 후안 데 비야누에바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주변의 건물에 층을 더 지어 현재의 5층 높이로 만들었고 아치형 포티코 여러 개를 설치했다. 이 재건축 작업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어 1854년에 마무리되었다.

 

마요르 광장에서는 투우, 가면무도회, 왕실 결혼식, 대관식 등의 행사가 거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곳이 항상 단순한 사교적 중심지였던 것은 아니다. 이 광장은 아빌라의 테레사, 이시도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등의 성인이 시성 받은 장소이다. 또한 17세기 스페인 종교 제판이 성행했을 때 이단자 등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처형당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 보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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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3세(Felipe III)의 청동 기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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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레도(Toledo)]


똘레도(Toledo)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져 있는 스페인 중부의 도시이다. 이는 똘레도 주의 도시이며 카스티야라만차(스페인어: Castilla-La Mancha) 자치지역에 포함된다.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언되었으며, 단연 문화적인 스페인의 유적지이다. 3대 종교(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스페인의 옛 수도이기도 하다. 스페인 역사상 수많은 유명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다.

 

돌레도는 서고트왕국의 수도였으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8세기에 정복한 이후 줄곧 수도의 역할을 하였다. 코르도바 칼리파(Califato de Córdoba)의 지배하에 똘레도는 황금 기를 누렸다. 이 시기 동안 똘레도는 라 콘비벤시아(La Convivencia : 공존)로 알려졌으며 세 종교의 공존처였다.

 

1085년 5월 25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가 똘레도의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그가 계속해서 무어인들에게 똘레도를 재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통합을 향한 최초의 구체적인 발판이 되었다.

 

똘레도는 철제 생산과 특별히 검 제작으로 유명한데, 여전히 시내 중심부에는 칼과 철제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펠리페 2세(Felipe II)가 1561년 궁정을 똘레도에서 현재의 수도인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고도 똘레도는 이제껏 없었던 잠시 동안의 침체기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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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도 전망대]


20171014_155318.jpg  '전망대'에서 바라본 똘레도 구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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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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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도 대성당(Toledo Catedral)]


스페인 카톨릭의 총본산지인 ‘똘레도 대성당’(Toledo Catedral)은 1225년 이슬람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페르난도 3세의 명에 따라 원래 이슬람사원이 있던 자리에 고딕양식을 기반으로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493년에 완성되었다. 성당의 내부는 화려할 뿐만 아니라 그 웅장함이 어마어마하다.

 

보물실에는 16세기 초 엔리케 아르페가 만든 성체현시대(Custodia)가 보관되어 있는데, 5,000개의 금.은.보석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무려 180kg, 높이가 3m 가량 된다. 한편, 성물실에는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종교화와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마치 작은 미술관에 온 것처럼 착각을 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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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보물실'의 백미(白眉)인 '성채현시대'(聖體現視臺)  : 내부는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약 18kg의 순금으로 되어 있으며, 외부는 183kg의 은으로 만들었다가, 16세기 말경에 금으로 도금했다. 이 작품은 약 5,600여개의 부품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금으로 된 나사만도 12,000개가 넘는다. 이 성체현시대는 매년 성체축일이 되면 똘레도 시내를 도는 행열에 그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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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도 수호성인의 황제관 : 이사벨 여왕이 쓰던 왕관을 알레호 데 몬또야라는 사람이 1586년 변형시켜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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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추기경들의 미사 집전복(400~500) : 금실과 보석으로 장식되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무거운 것은 14kg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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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토메 성당]


12세기에 처음 건설된 산토토메 성당(Iglesia de Santo Tome) 은 오르가스 백작에 의해 14세기 재건축되었으며, 똘레도 유대인 지구에 위치해 있다. 성당 탑은 벽돌, 말발굽 모양 아치가 혼재되어 똘레도의 무데하르 양식(카톨릭 & 이슬람교 양식 혼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산토토메 성당은 성당건물 자체보다는 똘레도에서 작품활동만 40년 이상 해 온 종교화의 대가인 엘 그레코의 걸작〈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전시되어 있어 유명하다. 원래 이름이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인 화가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엘 그레코'(그리스 사람)로 알려졌다. 그는 똘레도에서 40여년 가량 거주하면서 많은 작품활동을 했는데, 이 그림은 신실한 오르가스 백작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백작이 죽었을 때 그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기 위해 두 명의 성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신앙심 깊은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에 성 어거스틴과 성 스테판이 나타나 도왔다는 전설을 다룬 이 작품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성 어거스틴과 성 스테판이 오르가스 백작의 유해를 매장하는 장면을 그렸고, 상단에는 백작이 천사가 되어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그의 영혼을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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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수에그라(Consuegra)]



콘수에그라(Consuegra)는 카스티야라만차(Castilla-La Mancha) 지역에 있는 똘레도 주의 자치시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풍차마을로, 12개의 풍차들이 각자의 자태로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멀리 평원에서 보면 언덕위의 풍차가 아기자기하게 장남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풍차는 거대한 구조물로 보인다. 이곳은 카스티야라만차 대평원 가운데 작은 동산에 있어 항상 바람이 불어 풍차의 가동이 쉬운 곳이다.


풍차들이 서있는 동산의 중간에는 '콘수에그라 성'(Castillo de Consuegra)이 위치해 있는데, 이는 코르도바 왕국을 세웠던 우마이야왕조의 갈라프가 건축한 것으로, 훗날 알폰스 8세 때 가스티아왕국과 레온왕국의 주요군사시설로 사용되었다. 현재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에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출간 400주년을 기념해 250km에 이르는 ‘돈키호테 길’이 만들어졌는데, 곳곳에서 돈키호테가 괴물로 생각하고 싸움을 벌였던 풍차와 돈키호테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세르반테스 (Cervantes, 1547∼1616)

 

1547년 콘수에그라에서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1570년 스페인 군에 입대하여 그 다음해에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고 귀국 도중 해적에게 납치되어 알제리에서 5년간 포로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1580년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1585년 첫 소설 '라 갈라테아(La Galatea)'를 출판하여 비로소 고료를 받기 시작한 그는 1588년에는 세비야 해군 관련 일을 하다가 스페인 무적함대 전멸 후 투옥되었다가 이후 세무원일때는 은행파산의 여파로 투옥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보내게 된다.

 

이 투옥기간 중에 소설 <돈키호테의> 복안을 구상했던 것으로 보이며, 몇 년이 지나는 동안 계속 어려운 삶을 보내다가 1604년 원고를 탈고한 후 이듬해인 1605년에 출간하여, 많은 인기를 끌게 된다. 이때 그의 소설이 얼마나 인기였는지 당시 국왕 펠리페 3세는 길에서 포복절도하며 웃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은 정신이 나갔거나 돈키호테를 읽는 중이거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1615년에 속편 돈키호테를 발표한 세르반테스는 그 다음해인 1616년 4월 23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마드리드에서 사망하였다.

      

ㅇ <돈키호테(Don Quixote)>

 

세르반테스가 쓴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이자, 스페인 국민들은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소설 '재기 발랄한 시골귀족 돈키호테(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의 주인공 이름이 돈키호테이다. 이 소설은 노벨연구소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문학에서 1위로 선정되었으며, 서양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인정받았다.

 

자칭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와 그의 애마 로시난테,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순진한 산쵸 판사가 벌이는 모험이야기인데, 그 주인공의 이름 '돈키호테'(Don Quixote)로, 여기서 Don은 존칭이고 Quixote가 이름이다.

 

돈키호테를 따라 나선 충직한 하인 산쵸 판사(Sancho Panza)의 경우 그 이름이 재판하는 판사로 자꾸 오인되어 발음 그대로 판자(Panza)로 쓰기도 하는데, 그는 늘 돈키호테에게 바른 말을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거대한 풍차를 향하여 못된 거인들이라며 달려드는 장면인데, 바로 그 풍차의 고장이 이곳 콘수에그라이다.


돈키호테는 라만차의 평원에 서있는 풍차들을 보고 거인이라며 로시난테를 타고 돌진했다. 하인 산쵸 판사(Sancho Panza)가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돈키호테 : 아니, 저기 저, 기다란 팔뚝을 자랑하는 거인들이 안 보이나? 어떤 놈은 팔 길이가 거의 10m가 넘는 놈도 있는데.

 

산쵸 판사 : 아닌데요, 나리. 저기 보이는 저건 거인들이 아니라 풍차인뎁쇼. 그리고 팔뚝처럼 보이는 건 풍차 날개예요.


돈키호테 : 자네는 이런 모험이라는 것을 통 모르는 모양이구먼. 저건 거인이야. 정 겁이 나면 저만치 물러나서 기도나 하라고.... 그동안 나는 저놈들과 여태껏 보지 못한 맹렬한 싸움을 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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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수에그라 성'(Castillo de Consuegra)을 중심으로 서있는 12개의 풍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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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중인 '콘수에그라 성'(Castillo de Consueg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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