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라스토케, 플리트비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자그레브)



1) 라스토케


폭포와 물로 둘러싸인 '꿈 속의 마을'인 라스토케(Rastoke)는 크로아티아 슬루니지방에 있는  동화 속의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이다.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코리나강 물줄기를 따라 이어져 있으며, '플리트비체의 작은 호수'로 지칭되고 있다. '천사의 머리결'이란 뜻을 지닌 라스토케는 크고 작은 폭포가 쏟아지도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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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를 건너면 '라스토케'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데, 저기에 누군가 써놓은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란 "걱정 거리가 없다"라는 의미로,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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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에서 숙박을 하지 않는 관광객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길 건너편에서 마을을 조망할 수 밖에 없었네요. 다음 기회의 여행을 위해 마을 안의 모습을 담은 관련 이미지들을 등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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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플리트비체


아름답고 수많은 폭포로 연결되는 16개 호수가 있는 ..... 플리트비체(Plitvice)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곳으로 수많은 폭포로 연결되는 16개의 호수가 유명한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나무들과 꽃 그리고 호수와 폭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너도밤나무, 전나무, 삼나무 등이 빽빽하게 자라는 짙은 숲 사이로 가지각색의 호수와 계곡, 폭포가 조화되어 원시림의 풍경을 그려낸다.


유네스코 세게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플리트비체 호수공원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주는 것은 16개의 호수에서 떨어지는 멋진 폭포의 전경과, 이곳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들이다. 특히, 에머랄드 빛 투명한 녹색의 호수는 주변의 울창한 숲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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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시간 내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모두 관광할 수 없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관람하지 못한 아름다운 풍광들을 예술적으로 담아낸 관련 이미지들을 등재해 봅니다. 관련자료들이 등재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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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플리트


스플리트(Split)는 달마티아(Dalmatia)의 중부에 위치하며, 드넓은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운 해안도시이자, 휴양도시이다. 오래전부터 아드리아 해의 맹주로서의 명성을 얻은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약 25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수도인 자그레브와 항공기, 열차, 버스로 연결된다.  이 도시의 특징은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모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역사지구 및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궁전은 1979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여행객들로 항상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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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는 284년부터 305년까지 로마의 황제(284년~286년 : 단독 황제, 286년~305년 : 막시미아누스와 공동 황제)로 재위하였다. 그는 달마티아(현재 : 크로아티아의 섬으로 아드리아 해에 위치해 있음)의 디오클레아에서 출생하였는데, 비천(卑賤)한 데서부터 승진하여, 황제 누메리아누스의 친위대장(親衛隊長)이 되고, 황제가 암살된 후 284년에 군대의 추대로 제위(帝位)에 올랐다.

 

그는 암살 책임자를 처형하고, 곧 구동료 막시미아누스를 부제(副帝)로 기용(起用)하여, 갈리아의 바가우데인의 반란을 진정(鎭定)하게 한 후 286년 제국을 동서로 양분하여 그를 황제의 지위로 승진시켜 서방의 황제 자리에 앉히고, 부황제로 콘스탄티우스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동방의 황제로 취임하고 갈레우스를 부황제로 두었다. 이로써 제국을 4분할 통치하는 4분치제도(四分治制度; 4두 정치제도)가 성립되었다.

 

그는 수도를 니코메디아에 두고, 군사 ․ 경제상 중요한 동방을 직할하면서, 제국을 통치했다. 301년 재정상 광범한 개혁을 단행, 징세(徴税)의 신제도를 토지의 단위와 인두(人頭)의 단위에 기초하여 15년마다 조정하도록 한 후 화폐의 혼란과 물가 앙등에 대처하여 최고 가격령을 발했는데, 후자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 동양풍의 의례를 채용하여 군주의 존엄(尊嚴)을 높이고, 중앙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전제군주정치의 실현하였으며, 종교지도자로서 황제의 위상을 부각시키면서 황제에 대한 예배를 성행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가톨릭에 대해서 많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가톨릭 신자들의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로써 기원전 753년 4월 21일 팔라티노 언덕에 ‘로마’라는 새로운 도시가 건국된 이래, 그는 로마의 제5대 황제로 재위(54년~68년)했던 네로(Nero)와 함께 가톨릭을 박해한 대표적인 황제로 인정되고 있다. 그 해 처음으로 로마를 방문하여 치정 20년 기념제(紀念祭)를 개최하였고, 305년 막시미아누스와 함께 퇴위하면서 제국을 부황제들에게 물려준 후 달마티아의 살로네(Salonae; 현재 : 스플리트에 있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에서 여생을 보냈다.

 

공동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퇴위하면서, 황제 지위는 자손에게 세속되지 못하고 부황제들이었던 콘스탄티우스와 갈레우스가 황제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전 황제였던 막시미아누스의 아들인 막센티우스가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는 등의 혼란과 내전이 계속되었으나, 콘스탄티누스는 그를 폐위시키고 동·서 로마제국의 유일 황제(306년~337년)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o, 밀라노 관용령)을 선포해 가톨릭을 정식 종교로 공인하였고, 그 후 가톨릭이 국교로 제정되는 기반을 만들었다[역사적으로 1807년 나폴레옹 1세가 영국을 경제적으로 봉쇄시키기 위하여 내린 ‘밀라노 칙령’도 있었음]. 밀라노 칙령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제국 내 모든 시민들에게 적용되는 종교자유의 원칙을 선포한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시대에 몰수당한 재산이나 팔린 재산까지도 교회에 반납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밀라노 칙령 자체가 기독교를 국교화 하거나 특권을 베푼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같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뿐이지만 기독교가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기초가 됐다. 밀라노 칙령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취한 여러 조치들은 대중의 대량 입교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기독교 정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이은 아들들은 콘스탄티누스의 친교회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다. 비록 율리아누스 황제 때 반교회정책이 시행되긴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테오도시우스 1세 때인 380년 2월에 '가톨릭신앙에 대한 칙령'의 반포와 함께 가톨릭이 제국의 공인종교가 됐다. 이로써 300년간의 혹독한 박해를 이겨낸 가톨릭은 제국교회, 국가교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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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는 관광 휴양지로 발전하기 이전부터 일찍이 조선업, 화학, 시멘트 등 각종 공업이 활발히 발전하였다. 관광의 중심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이 고대 로마유적 안에서 먹고, 자고, 마시는 것을 모두 즐길 수 있다. 그 밖에 로마시대의 대성당, 베네치아식 고딕양식의 공회당, 고고학 박물관 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발칸반도의 대표적인 휴양도시인 스플리트는 긴 질곡의 세월을 겪었는데,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세계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1990년대 5년 동안이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은 도시에 자욱하게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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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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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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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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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남문(Bronze Gate),   2 : 동문(Silver Gate),   3 : 북문(Golden Gate),   4 : 서문(Iron Gate),                

5 : 성 돔니우스 대성당,   6 : 열주 광장,   7 : 황제 알현실,   8 : 그레고리우스 동상,          

9 : 아르니르 예배당,   10 : 나로드리나 광장



- '남문' 앞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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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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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돔니우스 대성당' 가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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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알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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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주 광장 & 성 돔니우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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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이었나, 7세기에 '성 돔니우스 대성당'으로 봉헌됨)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305년 은퇴한 후 아드리아 해 동안의 작은 반도에 있는 요새궁전(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으로 거처를 옮긴 바로 다음 해인 316년에 이 궁전 내에 있는 팔각형의 영묘 안에서 영원히 잠들었다[수세기 후인 639년에 이 궁전의 건설로 인해 피신한 이웃마을 살로나 사람들이 현재의 스플리트 시를 건설했다고 함). 7세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영묘는 성 돔니우스에게 봉헌된 기독교 대성당으로 바뀌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초기 기독교 박해로 악명 높은 황제라는 점, 그리고 성 돔니우스가 바로 그 와중에 순교한 성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Cathedral of St. Domnius)은 기독교 교회건축과 고대 로마건축의 매력적인 조합이다. 팔각형의 평면 설계나 로마식 기둥, 아치 등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황후를 새긴 부조장식과 함께 그대로 원위치에 서있다. 이후 13세기에 육각형 설교단과 고대 개선문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종탑이 추가되었다. 15세기에는 밀라노의 보니노가 제작한 롬바르디아 고딕양식의 돔니우스 제단이 덧붙여졌다. 16세기에는 시베니크 대성당을 건축하기도 한 달마티아의 유라이가 아나스타시우스 제단 위의 캐노피를 디자인하였다. 성 돔니우스 대성당은 세계 최고(最古)의 가톨릭 대성당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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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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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고리우스 동상  &  아르니르 예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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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드리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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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플리트' 에서 '두브로브니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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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르 알프스(Dinar Alps)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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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와의 국경지역 : 여기에서 약 21 Km 주행하여야 다시 '두브로브니크'가 있는 크로아티아에 들어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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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의 네움(N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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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아드리아 해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안도시로,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면적 1,782㎡, 인구 약12만 명의 작은 도시로,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해왔는데, 아드리아 연안의 스르지 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이 성곽으로 둘러싸인 전통적인 중세도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도시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사적이다.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라구사(Ragusa) 공화국이 되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중심지로 막강한 富(부)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 군주 아래 있다가(1205~1358)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도시가 요새화되고 지협의 각 측에 2개의 항구가 세워졌다. 15∼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고 엄격한 사회 계급 체계를 유지하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1416)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다.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15년 빈 의회 결의안에 의해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년 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1991년 10월,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군이 3개월에 걸쳐 총 공격을 해와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시가지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성채, 왕궁, 수도원, 교회 등 역사적인 기념물 가운데 가장 크게 손상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매년 7월 10일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여름 축제도 다시 개최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달마티아 문학의 중심지로 크로아티아 문학의 일부를 이룬다. 식품·포도주·올리브유 등의 생산이 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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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프리오 분수[Onofrio's Great Fountain])

 

오노프리오 분수는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도시성벽의 정문 근처에 있다. 1448년에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만들었으며 분수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중앙에 커다란 돔 모양의 석조 물이 있고 그 아래는 16면으로 되어 있으며 각 면에서 물이 나오도록 설계되었다. 원래는 돔 위에 커다란 쿠폴라와 조각상이 장식되었으나 1667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도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분수의 물은 약 20km 떨어진 리예카 두브로바츠카(Rijeka Dubrovacka)에 있는 우물에서 공급받는데, 둘 사이에 놓인 수로는 크로아티아에서 건설된 최초의 수로이며 당시로서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시설 자체가 획기적이었다. 오노프리오가 설계한 또 다른 작은 분수가 중앙로인 스트라둔(Stradun)의 끝에 위치한 타워에 있는데, 이것은 우아한 돌고래가 뛰노는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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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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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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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오노프리오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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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벽 걷기 & 주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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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카로 오른  '스르지 산'(412미터)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브로브니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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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년 나폴레옹이 세운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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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그레브


자그레브(Zagreb)는 크로아티아의 수도로서 전체 인구가 80만명의 작은 규모의 북부 내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전형적인 중유럽 도시로, 중세적 느낌과 동유럽 고유의 분위기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와 멋진 길거리 패셔니스타 등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1557년 이래 크로아티아 행정·문화의 중심지이자 수도로 기능하고 있으며, 동서양의 가교이자 최대 공업 도시로서 육상과 항공 교통의 중심지이다. 과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아 구시가 광장에는 다양한 양식의 거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17세기~18세기에 걸쳐 대화재와 전염병으로 인해 도시로서 번성이 주춤하였으나, 1776년 왕실 의회와 왕실 총독부가 옮겨진 후부터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에 가담하여 자그레브(Zagreb) 관할 구역이 확대되면서 1920년대 인구가 70%가량 증가하고 점차 중심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후 자그레브는(Zagreb)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시절에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를 잇는 제2의 도시이자 연방의 경제 중심지가 되었다. 유고연방으로부터의 독립전쟁(1991년~1995년) 당시 유고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큰 피해는 없었으며 독립 후 크로아티아의 수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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